어린 시절의 추억,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 수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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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글은 유표수집 이야기의 1번째 글입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어린 시절에는 우표수집이 꽤나 인기 있는 취미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말엔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판매했었는데, 어린 마음엔 이것도 우표 수집이라고 생각하고 코 뭍은 용돈으로 사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제가 다 모은 것은 아니고 형, 누나들이 모아 왔던 것을 제가 이어 받아 가지고 있는 것도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추억의 우표수집 앨범을 들춰보니 거의 10년간의 씰이 수집되어 있어 추억을 더듬어보며 한 장 한 장 살펴보려고 합니다. 연도별로 디자이너가 달라서 그림체를 통해 디자이너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씰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은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증표이다.

1904년 경 덴마크의 ‘아이나르 홀뵐'(Einar Holbøll)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작고 단순한 그림을 팔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그 해 크리스마스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이 바로 지금의 크리스마스 씰이다. 이 아이디어는 놀라운 효과를 내보였고 곧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당연히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이후 이들 국가들을 통해 곧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도 소개되었고 현재의 거의 전 세계적인 판매품이 되었다. 당시에는 단순한 우표에 가까운 모양이었으며 빨간색 ‘복십자’가 붙은 씰은 1907년 미국에서 내놓은 것이 최초이다.

한국에서는 셔우드 홀이 최초로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씰을 제작할 당시의 도안은 숭례문이었다고. 그러나 셔우드는 일제 강점기 말기 예민해진 일본의 탄압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나고 씰의 판매도 중단되었다. 이후 해방을 거쳐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1월 6일에 대한결핵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면서 씰 제작과 판매가 다시 이루어졌다.

[출처] 크리스마스 씰

1988년

농악놀이 캐릭터를 주제로 만들어진 씰입니다. 순서대로 농악놀이(장고), 농악놀이(소고), 농악놀이(징), 농악놀이(상쇠), 농악놀이(북)입니다. 원래 씰은 10장이 한 세트인데 저한테는 반 세트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세트중 반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989년

“내가 산 크리스마스 씰 결핵을 없앤다.” 사실 어린 마음엔 이 씰이 어떤 용도로 발행되는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한 거 같네요. 89년 버전은 조선시대 한복 차림의 인물들이 그네를 타거나 널뛰기를 하거나 연을 날리고 있는데요. 그 당시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디자인: 곽계정 / 제조: 한국조폐공사

1990-91년

크리스마스 씰이 어떤 버전은 연도만 표시하고 어떤 버전은 해당되는 기간을 표시하고 있는데요.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90~91년의 씰은 주제가 “시집가는 날”입니다. 전통 혼례를 주제로 하여 씰이 만들어졌는데요. 10장의 한정된 공간안에 전통혼례의식을 잘 압축해서 표현해낸 것이 일품입니다. 그림체가 정감 있고 아기자기하여 마음에 쏙 듭니다.

시집 가는날 – 디자인: 장완두 / 제조: 한국조폐공사

1991-92년

1991-92년의 주제는 “윷놀이”입니다. 명절에 다들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10장의 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씰의 묘미는 우표 여러 장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주제를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따로따로 몇 장만 구매했다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거 같습니다.

윷놀이 – 디자인: 양호일 / 제조: 한국조폐공사

1992-1993년

크리스마스 씰은 가끔 10장 1세트가 아니라 여러 세트가 발매될 때도 있었습니다. 1992-1993년의 경우는 발행 60주년 기념이었는지 2세트로 발행이 되었습니다. 주제는 “한국의 나비”이고 저의 경우는 첫 번째 세트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이니 용돈 사정상 모두 구매를 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데요. 그래도 이러한 사정조차도 지금은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머니가 넉넉했다면 이러한 사소한 수집쯤은 추억으로 남기 어려웠을 수 있으니깐요.

한국의 나비 – 디자인: 이명헌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왕은점표범나비, 제비나비, 남방노랑나비, 작은주홍부전나비, 왕오색나비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풀흰나비, 수노랑나비, 참나무부전나비, 상제나비, 금강산녹색부전나비

1993-94년

1993-94년 씰은 대한결핵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2세트로 발행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야생화” 두번째 세트를 구매하였습니다.

한국의 야생화 – 디자인: 장완두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물봉선, 현호색, 동백, 패랭이꽃, 수선화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참나리, 수련, 붓꽃, 능소화, 매발톱꽃

1994-95년

1994-95년의 주제는 “한국의 철새”입니다. 씰은 대부분 가로 이미지로 만들어지는데 이번 씰은 세로로 봐야 제대로 된 방향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한국의 철새 – 디자인: 장완두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위에서 아래로
물총새, 후투티, 흰눈썹 황금새, 멋장이새, 댕기물떼새
둘째 줄 위에서 아래로
밀화부리, 노랑때까치, 팔색조, 꾀꼬리, 노랑할미새

1995년

1995년부터는 연도 표기법이 다시 년도만 표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주제는 “남해 바다의 신비”로 2세트로 발행되었으며 저는 2번째 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해 바다의 신비 – 디자인: 장완두 / 발행: 대한결핵협회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위에서 아래로
해파리, 거북복, 달고기, 청줄돔, 꼬리줄나비고기
둘째 줄 위에서 아래로
줄도화돔, 쏠배감펭, 세동가리돔, 어렝놀래기, 뿔나비고기

1996년

1996년은 “한국의 전통미”가 주제이며 2세트로 발행되었고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세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1996년에는 용돈이 풍족했었나 봅니다.😎😍

한국의 전통미1 – 도안: 이준섭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바늘집노리개, 괴불노리개, 천도노리개, 대삼작노리개, 향갑노리개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염낭, 복주머니, 오방낭자, 향주머니, 귀주머니

한국의 전통미2 – 도안: 이준섭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머리꽂이, 화관, 은칠보비녀, 떨잠, 남바위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바늘겨레, 타래버선, 반짇고리, 또아리, 다식판

1997년

1997년 주제는 “한국의 곤충”입니다. 2세트로 발행되었고 저는 두 번째 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미2 – 도안: 장완두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물방개, 베짱이, 톱사슴벌레, 왕거위벌레, 장수풍뎅이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모자주홍하늘소, 늦반딧불이, 왕잠자리, 비단벌레, 칠성무당벌레

1998년

제가 가진 씰 마지막 소장품입니다. 이 이후로는 구매가 멈췄습니다. ㅜ,ㅜ 사실 왜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주제는 “스포츠 시리즈”이고 2세트로 발행되었으며 저는 첫 번째 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버전인데도 불구하고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스포츠 시리즈 – 디자인: 박성완 / 제조: 한국조폐공사

첫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야구, 농구, 축구, 배구, 야구
둘째 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농구, 축구, 배구, 야구, 농구

소회

그동안 장롱에 고이 잠들어있던 크리스마스 씰을 한 장 한 장 꺼내어 다시 보니 두근두근했던 어린 시절이 조금은 기억이 나는 거 같습니다. 이걸 모았던 시절이 벌써 30년이나 지났다니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네요. 30여 년 동안 주변의 모든 것은 변했지만 이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고 나를 따라와 주었다니 놀랍기도 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엔 이러한 취미가 유행했다지만 요즘 세대에도 우표나 씰을 수집하는 아이들이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오프라인으로 편지를 쓸 일도 없으니 우표란 것에 대한 의미 자체를 모를 수도 있겠네요. 요즘도 기념우표가 발매는 되므로 수집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과거처럼 우편을 붙이기 위한 용도로서의 우표가 아니라 완전한 “수집품”으로서의 우표로 정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든 과거의 추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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